
안녕하세요, 블로거 여러분, 저는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단군 박공 입니다~여러분들이 남겨 주시는 의견 하나 하나가 모여서 소중한 내일을 새롭게 발전 시키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루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시고요 앞으로 자주 들러 주십시오~...그리고, 블로그의 주인 단군 박공은 일국왕의 애견 이명박과 수구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또한 조중동 매국 찌라시들의 조기 몰락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Hello, everyone, this is "The Parks" Blog. All of you are dearly invited in order to debate on topics that I post. I believe that every bit of your opinions is "Precious" . These bits of opinions will get accumulated for reshaping the world we all be living tomorrow. Don''t be hesitating for posting your opinions. Let''s have some decent fun. Shall we?...^^...
도반 마을<---->안나푸르나 남릉 베이스 캠프[Doban Village<---->A.B.C]
촘롱<---->도반 마을 구간[Chomrong<---->Doban Village]
간드룩<---->촘롱 구간[Ghandruk<---->Chomrong Lag]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야풀<---->간드룩 구간[Nayapul<---->Ghandruk Lag]
Annapurna Sanctuary Trekking-장도를 위한 준비[Ready for the Big Steps?]
안나푸르나 트랙킹,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다![Annapurna Sanctuary Trekking, Walking into the House of God!]
영국제 버디 인스퍼레이션 사용도중 사망한 남편의 이야기[My Husband who Passed Away while Diving with Buddy Inspiration C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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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브코리아님... 언제나 반갑습니다... 예, 지금 한국 입니다... 발바닦에 먼지나게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사업은 잘 되시지요?...^^
오랫만에 방문 드립니다. 건강하시죠? 고국에 방문 하신다고 하시니 못뵈었던 분들 많이 뵙고 즐거이 보내시길 바랍니다.
What U cann't do it that ..Joon ? O..Oh... amazing ..^_^
좋은 글 말미에 근황을 담으셨네요? 설 잘보내시고, 생일도 축하드립니다. 여행도 알차게, 좋은 분들과 아쉬움 없는 시간 보내세요.
그것도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목포에 눈물~... 크...분위기 풍긴다...얼마만인가요?... 이제 몇 시간 후면 들어 갑니다... 연락 드리지요...^^
Just the majestic beauty of Mother Nature... That's all m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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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마을<---->안나푸르나 남릉 베이스 캠프[Doban Village<---->A.B.C]
여행/Travel 2010-02-07, 18:35:58
Dive and Travel Issue27
안나푸르나 트랙킹,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다!
Annapurna Sanctuary Trekking, Walking into the House of God!
Journal and Photos by Joon H. Park
01.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Roof of the World, the Himalaya]
02. 장도를 위한 준비[Ready for the Big Steps?]
03.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야풀<---->간드룩 구간[Nayapul<---->Ghandruk Lag]
04. 간드룩<---->촘롱 구간[Ghandruk<---->Chomrong Lag]
05. 촘롱<---->도반 마을 구간[Chomrong<---->Doba Village]
06. 도반 마을<---->안나푸르나 남릉 베이스 캠프[Doban Village<---->A.B.C]
07. 안나푸르나에서 하산 하며[Solong, Annapurna]
도반 마을<---->ABC 구간[Doban Village<---->ABC Lag, Keep on pushing for A.B.C]
아, 더 춥다. 4000 고지로 접근을 할 때마다 기온이 피부가 느낄 정도로 떨어지는걸 느낀다. 그러나, 그런건 관심에도 없다는 듯이 얼음장 같은 계곡물로 매일 저녁마다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단군 박공이다. 일종의 오기인데, 지독한 감기몸살을 이기려는 끈질긴 투쟁이었다고 보시면 좋으리라.

지금까지 걸어 오면서 그 지독하게 들러붙어있던 끝끝내 떨어지지 않고 괴롭히는 구나. 이제 안나푸르나의 남릉 능선 베이스 캠프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이제 오늘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그렇게 이쁘다는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지척에서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도반 마을에서부터가 종주객들이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명품관경이 즐비하게 도열하고 있는 구간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구간도 어디에 내놔도 전혀 뒤지지않는 구간이지만 역시, 명산에는 백설 같은 눈이 그 산 전체를 덮고있는 것을 볼 때 진정으로 장관임을 느끼는 것이리라. 절기마다 각기 다른 맛은 있겠으나 만년설이 있다는 히말라야에서는 도저히 빼놓고 볼 수 없는 산악풍경인 셈이다. 그러한 죽음 같은 명품 광경이 좌*우측으로 베이스 캠프까지 올라가는 곳까지 도열하고 등반객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는 구간이라는 말이다.
역시, 오전 5시30분, 눈을 뜨고 죽음 같은 정적을 뚫고 들려오는 산양의 쩌렁한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처음에는 멧되지 소리인가하고 궁금해 했으나 아침을 들면서 차크라가 말하기를 네팔의 고산에서는 귀한 산양이고 계절에 따라서 사냥이 금지되어있는 금수라고 한다. 또한, 자연보호 및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서 떼는 것 조차도 금지가 되어있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등유를 운반을 해서 밤에 불을 밝히기도 하고 그 기름을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하는데 사용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기름지고 맛 진 음식을 대하기가 상당히 힘이든 것이 사실이다. 허나, 자연을 오랫동안 보하고 인간으로 인한 자연파괴를 최소화 하겠다는 운동에는 적극 찬성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달바트 라고 부르는 네팔 특유의 전통 비빔밥이다. 우리네의 그런 맛깔스러운 비빔밥을 상상하신다면 엄청난 오산이다.

내일 모레(단기 4343년 2월 8일 오전)면 그 맛깔스러운 비빔밥을 입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입에서 침이 넘쳐 흐를 정도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신촌 떡복이와 오뎅 국물, 흐미~미칠 지경이다. 한국 음식을 입에 “전혀” 안대본게 벌써 3년이 지났다.
아무튼, 그 네팔 특유의 비빔밥인 달바트(Dalbat)를 하루도 빼지 않고 간드룩구간(Ghandruk Lag)부터 지금까지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으로 하루 세끼를 죄다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미치겠다. 도시에서 먹었던 달바트(Dalbat)하고는 전혀 맛이 다르다. 양념도 맞지를 않고 음식에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서너 가지 채소와 밥 그리고 우리나라의 된장국 같은 국물이 전부이다. 잘만 만들면 우리나라의 비빔밥 정도의 수준으로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도 있을 것인데 전혀 그런 맛이 이곳 안나푸르나 종주를 들어 오고 나서는 도무지 느낄 수 없음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래도 사실 귀한 음식이다. 그저 감사하게는 먹고 있으나 그래도 뭔가 다른 메뉴가 나올 법도 한데 전혀 아니다. 환장하겠더군. 그래서, 이곳 아이들이 단것과 소금이 함유되어있는 포 종류나 사탕이나 쵸컬렡 종류를 건네주면 자신들의 쓸게도 빼줄 정도로 친절한 웃음을 건넨다. 단군 박공은 그들의 그런 심경이 백분 이해가 된다. 그나마 카트만두에서 구입한 50개들이 사탕 한 봉지에 의지해서 근근이 그 단것과 짠 것들의 욕망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오다가 학생 몇을 만나서 삼분의 일을 나누어 주었고 또 이곳 도반 마을에서 아이들 셋을 만나서 그 절반을 나누어 주니 이제 몇 알 남지 않았구나. 그래도 그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은 더 따듯해지는 것 같더군.

음식욕을 참아야 한다. 단군 박공은 이곳을 취재라는 명목으로 들어와서 그저 잠시 잠깐 있다가 다시 하산할 것이나 이 아이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아마도 이곳에서 평생을 살 것이리라. 일종의 축복 이지만 자연의 축복이라는 의식이 없다면 그 또한 감옥 같은 삶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꾸욱하고 메이더군. 그러면서 뱅콕의 아들 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은 거 있지. 당시, 아들 아이는 겨우 4살이 안될 나이였다.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였고 그렇게 아스라한 모습을 목격한다거나 아니면 너무나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목격할 당시 가장 떠오르는 두 사람의 얼굴, 아내와 아들 아이. 당시, 딸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 있었을 시기였고.
아침을 들고 밖을 나가보니 일본인이 나와서 저쪽에 보이는 마차푸쳐리 산을 바라보고 있구나. 이곳에 붙이는 사진들이 바로 그곳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사진이 아주 제대로 나온 듯싶었다. 운도 좋았고. 이제는 왜 이 산이 물고기 꼬리 산이라고 불리는지를 명확히 이해 하시리라. 그 생김새가 마치 물고기의 꼬리와 같은 형태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더 희귀한 사진은 안나푸르날를 기점으로 하산할 때 촬영한 사진이다. 그 사진을 찍고는 너무나도 좋아서 그 자리를 당분간 지켜서서 그 산을 바라보던 기억이 새롭다. 산의 이름에 아주 딱 인 장소에서 그 영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고스란히 기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영산을 지나서 약 한 시간 정도를 걷다 보면 이제 완전히 남릉으로 넘어가면서 마차푸쳐리 산의 모습이 변하게 되고 저 멀리 마차푸쳐리 베이스 캠프(Machhapuchhere Base Camp, M.B.C)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로 이 구간에 6천미터에서 7천 미터급의 산 봉우리들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며 등반로의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도 웃긴 게, 이런 엄청나게 큰 산들을 가리켜서 일명 “언덕(Hill)” 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언덕이란다 언덕…ㅋㅋㅋ…이것들이 언덕이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그럼 둔덕인가?” 라는 생각을 그 언덕이라는 말을 듣곤 어처구니가 없어서 수도 없이 해보았다. 물론,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나름대로 민족의 뿌리가 되는 산이고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물줄기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남다르게 돋보이는 민족의 영산 이지만 단지 규모만을 놓고 본다면 정말 너무나 그 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음이다.
이런 너무나도 가슴 벅찬 장대한 풍광을 사방 천지로 둘러 쌓인 체 오늘도 또 꿋꿋이 걷는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단군 박공의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영혼들이 자꾸 생각난다, 나의 아내 와 사랑스러운 아들, 그리고 한국의 아버님과 유명을 달리하신 오마니, 너무나 간절히 그들과 이곳의 대지를 밟고 싶다. 가슴이 시리다, 눈물이 날만큼 시리다. 이 감정을 어찌 다 말로, 글로써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곳을 직접 두 다리로 걸으면서 지구의 생생한 모습을 가슴으로 느끼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조상님들이시여.
오늘의 목적지는 안나푸르나 남릉 베이스 캠프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대자연의 파노라마이고 미술관의 걸작 풍경화들이다. 미칠정도로 기분이 좋다. 마치 어린아이가 다시 된듯하다. 단군 박공,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미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고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정신이 다 빠질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도반에서 마차푸쳐리 베이스 캠프(Machhapuchhere Base Camp, M.B.C)까지만 14시 이전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A.B.C 까지는 18시 이전까지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야간산행을 위한 준비는 하였으나 야간 산행 이라는 것이 또 특이해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봉착할 수 있기에 그 점을 고려해서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까지 목적지에 도착을 하려고 하는 심산이다. 그러니, 도중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열심히 걸었다.
지척에 바로 M.B.C가 보인다. 사실, 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너무나 거대한 거리감으로 인해서 정작 속도감도 느껴지지가 않았었고 넋 놓고 한 두어 시간 걸어오다 보니 바로 눈앞에 떡 허니 M.B.C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M.B.C는 영산을 오르기 전에 캠프를 치고 전문 산악인들을 받는 곳이 아니고 마차푸쳐리 산(Mt. Machhapuchhere) 근처이기에 그리 이름이 건축된 곳이며 근처의 다른 7천 미터급과 6천 미터급의 산들을 등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이 되는 중간 기착지점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바로 코앞에서 보는 마차푸쳐리 산은 그 모습에서나 웅장함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던 직설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나무를 보려 하지말고 일단 숲을 보라고” 말이다. 다시 되뇌지만 그간 취재 운이 상당히 좋았다고 느껴지더군, 그 아름답고 동시에 신비주의적인 모습 그리고 웅장함을 한꺼번에 모두 취재를 하면서 이곳까지 올라왔으니 말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거대한 산을 등반하거니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야전 운동에서는 걸을 때마다, 한번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인생의 철학에 관해서 심오한 명상으로 침잠한다. 당시의, 단군 박공의 오른쪽 새끼 발가락의 발톱과 왼쪽 네 번째 발톱이 거의 빠져서 양말 안에서 덜렁거리는 중이었다. 신발이 단군 박공의 발에 맞지 않으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물론, 양 발의 엄지 발가락 둘은 이미 그 옆의 허물이 까져서 그 위에 반창고(Bandage)를 덕지덕지 붙이고 걷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래도 이만한 등산화를 빌려준 “트랙 & 어드벤츄어(Track & Adventure)”사의 사장인 쏨 타파(Som Thapa)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내심 골백번을 표하기도 했다. 이 마저 도 없었더라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
드디어는 M.B.C 이다. 오는 도중에 차크라가 점심을 때우고 가자고 했으나 마다하고 M.B.C에서 여유 있게 점심을 들고 그곳을 둘러보기로 하고자 서둘러서 온 것이다. 단군 박공과 같이 움직이던 일본인과 연로한 가이드는 이미 눈에서 멀어졌는데 그들은 저 밑에서 점심을 들고 천천히 적응을 하면서 올라오겠다고 이미 차크라와 입을 맞추어 놓았고 A.B.C에서 합류를 하겠다고 했단다. 또한 약, 12명이 한 조로 구성을 해서 등반을 하던 프랑스 팀과도 이미 갈라져서 그 팀은 오늘 밤 이곳 M.B.C 에서 하룻밤을 숙박하고 다음날 A.B.C 로 올라온다고 하는구나. 처음에는 왜 이들이 이렇게 천천히 등반을 하는지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오밤중에 잠을 자다 말고 깨달은 것이었다. 바로 “고산병(Altitude Sickness)” 때문에 낮은 고도에서부터 천천히 적응을 하면서 올라오고자 했던 등반 방식이었던 것이다. 단군 박공은 그걸 몰랐던 것이고 필경 알았다 하더라도 시간적인 제약으로 그리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붙어있던 몸살 감기가 어쩐 일인지 ABC 에 접근을 할수록 잠시나마 소강상태로 들어 가는 것 같아서 내심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인데 그것이 골칫거리로 불거지게 될 줄은 정말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M.B.C에는 마침내 13시 50분에 도착을 했고 도착하자마자 웃옷을 벗어서 버너 근처에다가 지니고 있던 삼각대를 세워두고 말리기 시작했고 그 지겨운 달바트(Dalbat)로 후딱 점심을 때우고는 밖으로 나가서 휘 둘러보니, 와, 이건 정말 극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도착 당시에는 해가 비추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서 약 30분 후에는 단군 박공의 도착을 축하라도 해주려는 듯 검은 먹구름과 동시에 흩뿌리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서 축하공연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련한 심정으로 명상에 빠져 있을 라니까 불과 몇 분 사이에 그 부슬거리던 비가 장대비로 바뀌더니 바로 탁구공 정도의 크기의 눈덩이가 되어서 그야말로 들이 붇더군. 그걸 보고 있자니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만일 이런 급박한 기상 변화가 엄홍길 대장이나 박영석 대장께서 8천 미터급 거봉들을 등정하시기 막바지에 발생한다면 참으로 난감 하리라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래서, 그 퍼 붇듯이 내리는 눈발을 피해서 캠프로 쏜살같이 돌아와서 보니 차크라와 그곳의 캠프지기 몇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은 이곳에서 숙박하고 내일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1시간 동안 등반을 하고 마지막 종착점에서 해맞이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14시를 향하고 있는 중이었고 만일 1시간 이내로 눈발이 멈추지 않는다면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러야지 싶었는데, 사실, 그 당시 단군 박공이 다음 날 새벽에 기상을 해서 마지막 구간을(M.B.C<---->A.B.C) 등반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당장은 몸살 감기가 소강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게 또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15시 까지만 기다려보고 그래도 눈이 멈추지 않으면 이곳에서 숙박을 하리라고 말을 해놓고 짐을 다시 따로 싸놓고 튀어나갈 순간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눈이 어느 정도로 오느냐 하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순간도 멈추지 않고 퍼 붇는다. 앞이 보이지를 않으니 어딜 향해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소리않고 멍하고 창 밖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엄청나게 내리던 폭설이 기적처럼 15시에 멈췄다. 뒤도 안 돌아보고 차크라에게 나, 간다 하고 말을 하곤 베낭을 메고 쏜살같이 뛰어 나갔다. 그 뒤를 차크라도 웃으면서 좆아온다.
여기서 이제 두 시간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그런데 경사가 있어서 빨리 걷지는 못하겠다. 일단 눈이 멈추면 약 두 시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오늘 안으로 무사히 도착을 하는 것에는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더군.
한 1시간을 걸었을까? 오던 눈도 완전히 멈추고 위쪽의 안나푸르나가 있는 곳에서부터 하늘이 맑게 게이는 것이 보인다. 취재 운이 정말 좋은 것이리라. 약 30분을 더 걷고 나니 이제 저 멀리에 있는 안나푸르나의 남릉 베이스캠프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한숨이 놓이더군. 목적지가 바로 코앞이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급 생기더군. 그래서, 베낭을 바위에 내려놓고 사진기를 꺼내 들곤 주변의 대 장관을 하나씩 촬영을 시작했다.

가슴이 벅차고 단군 박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와 있는듯한 감상을 받았다. 백만 불짜리 풍광이다. 단군 박공의 내공이 좀더 뒷받침이 되었었더라면 아마도 더 훌륭한 사진을 담아왔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촬영한 그곳의 모습이니 양해하시고 감상을 해주셨으면 한다.
그렇게 신이 나서 사진을 만들고 있으니 밑에서 저 밑에서 두 명의 짐꾼이 엄청나게 큰 짐을 메고 끙끙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바로 뒤로 일본인 등반객과 초로의 네팔인 가이드도 역시 뒤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사진을 만들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 두 명의 짐꾼을 세워두고 사탕을 몇 알 건네니 웃으면서 받아서 입에 넣는다. “거, 짐이 꽤나 무거워 보이는데 무게가 얼마나 되는 게요?” 하고 물으니 어눌한 영어이지만 제법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로 또박또박 답변을 한다, “30킬로 그램 입니다. 우리 짐꾼들이 법적으로 들고 나를 수 있게끔 법으로 규정이 된 무게 이지요.” 그 말을 듣곤 입이 벌어지더군. 이 고산에서 30kg의 등짐을 지고 이 험한 경사진 산을 등산화 없이 일반 운동화를 신고 오르는 그들이 너무나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이렇게 되받았다, “햐, 그러면 그게 며칠간에 걸쳐서 이렇게 여기까지 오신 거요?” 하니, 그들의 대답이 사람 멍 때리게 만들더군. “오늘 오전 9시에 나야풀(Nayapul)을 출발 했으니 점심시간 제외하고 총 7시간이 걸렸습니다.” “….!!!!....*_*….!!!!....”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곳까지 올라오는데 단군 박공 장장 4일이나 걸렸다. 그런데 이들은 단군 박공보다도 체구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동일한 거리를 주파한 것이다. 그것도 30킬로그램이라는 살인적인 등짐의 무게를 견뎌내면서 말이다. 참으로 존경스럽더군. 네팔의 자랑스러운 후예들이다.
그들과 뒤에 쳐져 있던 일본인과 네팔 가이드를 먼저 보내놓고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의 산들을 죄다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약 50분간에 걸쳐서 사진 촬영을 하였다. 6993미터의 마차푸쳐리 산이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금빛 태양빛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장관과 7219미터인 안나푸르나 남릉(Annapurna South)으로 넘어가는 태양이 뭐가 그리도 아쉬웠던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뿜어내는 코발트 빛에 세상이 온통 한 장의 그림과 같이 빛이난다. 장관이다. 이보다 더한 대자연의 빛의 향연을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다. 가슴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뇌로 뿜어져 들어간다. 정말이지, 숨이 다 멎을 정도의 희열 감을 느꼈다. 이거 담아야 한다. 사정없이 셔터를 눌렀다. 사진기술이 뒷받침이 되어주질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그런 완벽한 대자연에 단군 박공이 들어가 있으니 내 자신 역시, 자연의 일부분 이고 스스로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바로, 그곳에서 대자연이 신이구나 하는 신성한 마음이 들었고 확신에 찬 믿음이 들었다. 오로지 이 모습만으로도 단군 박공이 금번 취재에서 얻고자 하는 대부분을 얻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18시 45분, 마침내 단군 박공의 최종 목적지인 A.B.C 남릉 캠프에 도착했다. 도착을 하니 그곳의 세 곳의 숙박시설 중에 한 곳을 들어가보니 이미 세 명의 한국인 여성이 여장을 풀고 있었고 더불어서 일본인과 그 67살의 네팔 가이드 그리고 몇몇의 짐꾼들이 한데 어울려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곳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단군 박공에게 다가오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에서 한 기업에 취업을 해서 3년인가 돈을 벌어서 이곳으로 들어와 그 벌어온 돈으로 당시의 숙박 시설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국인들의 발자취가 곳곳에서 보이는 것이 목격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주문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에서는 스파게티가 된단다. 헐, 이 무슨 영광이라는 말인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나오는걸 보니 역시 성에는 차지는 않으나 그래도 간만이라 맛 지게 먹은 기억도 난다.
숙소에서는 기본적으로 남들이 사용하던 담요를 원하는 만큼 공급을 해준다. 더불어서 슬리핑 백을 제공 하기도 하는데 남들이 사용하던 거라서 거름직하게 생각된다면 자신의 장비를 사용해야 할 테고 이곳까지 들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음을 숙지 하시기를 바란다.
한가지 웃기는 건 이곳에서 잠을 자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단군 박공, 그 밤에 아주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저녁을 들고는 너무나 피곤하고 해서 밤 9시에 잠에 들었다. 피곤해서 잠에 들기는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고 귀에서 울림이 들리고 기침과 동시에 코가 막히면서 농이 흐르지 뭔가. 정말 죽을 맛이더군. 머리는 잠을 자고자 필사적으로 스위치를 끄고자 하는데 몸은 그 반대로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뒤척이다 보니 새벽 1시이고 오줌이 마렵지 뭐냐.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을 가려는데 완전히 맛이 간듯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질 않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데서나 앞자락을 까고 오줌을 누는데 막상 누려니 나와야할 오줌이 니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미치고 환장 하겠더군. 추워서 말이다. 또 누군가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고 말이다. 그러다가, 머리를 들어서 마차푸쳐리 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허공에 그야말로 수억 개의 별들이 떠서 마치 우주쑈를 벌이는 것이 아닌가? 왜 그렇게 보였느냐 하면, 이렇게 많은 수의 별들이 죄다 오른쪽으로 1초에 수십 번씩을 회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가만 생각을 하니 단군 박공이 오줌 누다가 말고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저 별들이 왜 미친 듯이 회전을 하느냐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등줄기에서 또 식은땀이 주루룩 흐르더군. 그라곤, 생각했다, “고산 병이다(It’s Altitude Sickeness)” “좆됬다(I am fucked up)”

고약한 몸살 감기를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드디어는 올 것이 온 것이다.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서 거울을 보았다. 눈이 터질듯이 불거져 나오는 느낌 이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니 정말로 두 눈이 왕눈이 눈이 이미 된 상태이고 밖으로 엄청나게 튀어 나온 상태이다. “아~, 이게 바로 그 무서운 고산병 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지면서 엄청나 공포감이 엄습함과 동시에 취재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취재만은 끝을 봐야 했기에 그런 것이다. 미치고 환장 하겠더구먼. 이제 오늘 밤만 지내면 하산인데 마지막까지 와서 이렇게 일이 틀어져 버리니 너무나 속이 타는 것이다.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여기서 아침까지 게기고 있다가 사진을 만들고 곧장 헬기를 불러서 병원으로 가? 아니면 지금 당장 짐꾼 하나를 고용해서 하산을 해?” 사실은 둘 다 말이 안 되는 시나리오였다. 이곳의 응급용 헬기 이용료는 이 고도까지 오는데 미화 만 불이 넘어가는 돈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달콤한 잠을 망치는 것도 취재하는 기자로써의 품행에도 걸림돌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명상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이불 속에서 새벽 1시 30분부터 5시 3분까지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그 밤을 꼴딱 세웠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ㅋㅋㅋ
공지: 이제 단군 박공, 몇 시간 후면 그립던 조국으로 일시 귀국하려 합니다. 귀국을 그 동안 오랜 시간 동안 준비를 해왔습니다.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 않은 것이 벌써 3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외국 생활은 20년이 넘었군요. 그간, 한국 분들 만나지 않고 한국 음식 먹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려왔습니다.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 동안 제 블로그를 통해서 소통하시던 분들과도 실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레기도 합니다.
헌데, 일단은 귀국하고 나서 걸쭉한 된장찌개하고 떡만두국 한 그릇 먼저 들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제 생일이 설날 전야인 12일 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신명 나는 설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설을 세게 되었습니다.
호랑이의 해를 맞이해서 제 블로그에 오셨고 앞으로도 방문해 주실 많은 동포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알찬 정보와 대한 사나이의 기개를 펼치는데 일조가 될 수 있는 대찬 블로그로 성장할 것을 다짐 드립니다.

Post by: Humanist | 2010-02-07, 18: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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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학 2010-02-08 08:59:19
단군 2010-02-08 14: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