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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E04, 수중 동굴 다이빙의 세계-쉨 엑슬리[The Dawn of Cave Diving]-Sheck Exley
동굴다이빙/CaveDiving 2009-07-08, 16:07:10
Underwater Cave Explorers, U.C.E
수중 동굴 다이빙의 세계
The Dawn of Cave Diving
Sheck Exley, U.S.A
Journal by Joon H. Park
Cave Photos Extracted from Book, "The Dakness Beckons" by Martyn Farr
The Book was forworded by Dr. Bill Stone
쉨 엑슬리(Sheck Exley)
미국 내 동굴 다이빙의 산지인 플로리다(Florida)에서 1949년 4월 1일 출생하여 1990년 초반까지 세계 수중 동굴 역사상의 진정한 수중 동굴 탐험가 임과 동시에 대중의 수중 동굴에 대한 계몽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교육자로도 지목 되던 인물 이었다.

SE가 처음 다이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6년2월로써 그가 18세 되던 해에 그 지역 YMCA의 오픈 워터 과정에 등록한 후부터 이다. 이때 그는 조 프로절(Joe Prosser)라는 동굴 다이빙계의 또 다른 개척자를 강습 과정 친구로 사귀게 된다.
이들이 6주간의 오픈 워터 과정을 끝내갈 무렵 SE는 이미 수중 동굴 다이빙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으며 실제 개방 수역 훈련 다이빙 도중 에는 팀에서 우연치 않게 흩어지는 과정에서 훈련 장소에 있던 한 수중 동굴로의 ‘무단’ 신고식을 치르기에 이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 후 그는 끊임없이 수중 동굴로에서 다이빙을 행하게 되며 이러한 와중에서 동굴 내부에서 공기통의 공기가 바닥이 나는가 하면 또 다른 경우에는 들어갔던 수중 동굴의 출구를 찾지 못하여 거의 익사의 위기 까지 가게 되는 절명의 순간을 두 차례 겪으면서 수중 동굴 다이빙을 조금 더 안전 하게 행하기 위한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1968년 Georgia대학에 진학하여 공부 할 당시에는 ‘Dixie Cavern Kings(DCK)’ 라는 다른 다이빙 클럽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른 전문 수중 동굴 다이빙 클럽을 창단 하였으며, 1969년 SE가 D.C.K의 회장 이었던 기간 에는 미국 최초의 ‘수중 동굴 다이빙 훈련 교과서’를 저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근거 하여 또한 최초의 동굴 다이빙 훈련 과정을 창설, 일반인을 훈련 및 그의 과정에 따른 자격증을 발급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당시 그가 더욱 안전한 동굴 다이빙을 위하여 두 가지 중요한 기술을 창안(Invented) 하였는데, “One Third Rule(1/3법칙)” 과 “Stage Diving(구간 다이빙)” 기술이 바로 그들 이엇다.
1/3 법칙(One Third Rule)
1/3법칙이란, 다이버가 지니고 있는 공기통의 공기를 3등분 하여 1/3은 동굴 내부로 관통 시에 그리고 나머지 1/3은 동굴에서 퇴수 할 때 그리고 마지막 1/3은 동굴 내부 또는 외부 에서 자신 및 동료 다이버가 위급 시에 사용 할 수 있게끔 절도 있는 호흡 공기 의 관리를 취하자는 취지의 기술 개발적(Technological Evolution) 측면의 대 창안 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의 대부분 동굴 다이버 들로부터 즉각적으로 받아 들여 지지 않았는데 이유인 즉은, 이들이 자신들의 공기통의 1/3이라는 공기를 반드시 위급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 하고 사용되지않는다면 이 또한 낭비 라는 생각이 지배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개념을 내세우던 다이버 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SE의 법칙이 옳음을 인정 하게 되는 것이다.
구간 다이빙 기술(Stage Diving Technique)
다이버가 깊은 수심 또는 깊은 수심 및 장거리 동굴 관통 시에 그 모든 필요 공기통 또는 트라이믹스(Trimix) 깨스통 들을 지니고 다이빙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정 구간 간격을 두고 공기통/깨스통들을 깔아 두면 더욱 안전한 다이빙을 행할 수 있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그 당시는 물론 이거니와 현 수중 동굴 다이빙 및 탐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기술의 하나로써 동굴 탐험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자 하는 이들은 반드시 마스터 하여야 하는 핵심 기술중의 하나이다.
수중 동굴 다이빙 시에는 공기를 호흡 하여 다이빙에 임한다는 개념이 아닌 “호흡수를 헤아린다”는 개념으로 다이빙에 임하기 때문에 해당 동굴 및 수심에 맞게 결정된 충분한 수의 공기통/깨스통 들을 반드시 확보 하여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구간 사이의 호흡수 및 사용 공기량을 미리 계산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력적인 활동을 하던 SE는 1973년, 미국의 NSS(National Speleological Society)의 분과인 CDS(Cave Diving Section, NSS-CDS)의 회장직을 맡게 되는데 이는 1969년 Florida의David Desautels 와 Larry Briel에 의하여 창단된 NACD(National Association for Cave Diving)가 그들의 정규 맴버 선출을 Florida의 거주자 에게만 국한 하는 것과는 달리 미 전역 에서 회원들을 모집 하였던 민주주의 제도에 입각한 비영리 단체(Non Profit Organization) 였다. 이러한 NSS-CDS가 3년 뒤인 1976년에는 세계 제1의 수중동굴 교육 기관으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국의 상황과 비교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보았던 미국의 NSS(National Speleological Society)란 한국어로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겠다. 미, 전국 동굴 학 협회. 여기서 미국 이라는 말을 한국 이라는 단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National Speleological Society of Korea, 즉, ‘한국 동굴 학 협회’쯤 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미 1940년대 초반기부터 수중동굴 에서 고대 인간 및 지구의 역사적 진화 과정의 흔적을 연구 하는데 막대한 자료 검출의 무한한 가능성을 터득한 나머지 적극적으로 민간 자본의 유입을 정부 차원에서 권장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럼 과연 이들은 자신들의 동굴이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파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질문에 굳이 답변을 한다는 것이 우스울 뿐이다. 이러한 탐험 또는 모험, Whatever you want to call it, they had clearly understood there were a lot more things they could get from it rather than lose anything by doing it.
그렇다,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것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 그 주된 이유였다.
그럼, 그 동안 우리 아니, 한국의 ‘동굴학회 인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오로지 정해져 있는 이들 만이, 굳이 지목 하자면 정부 의 비호 아래 학계 및 학자 라는 ‘탈’을 뒤집어쓴 이들의 근거 없는 ‘자연 보호’ 또는 ‘동굴 보호’ 라는 터무니 없는 구호를 외치며 전국민의 ‘앎(Seeking for the Knowledge)’ 권리를 상대로 한 ‘우민화’ 정책에 동조 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여기서 필자는, 미국 또는 다른 나라가 했으니 우리도 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단세포 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 나 도 알고 싶어 한다(Others want to know about it as much as you want to know about it.)는 단순한 인간 기본 권리(Basic Human Right)가 무시(Ruled Out) 되었기 때문이다. 크게 반성 하고 어서 빨리 민간인의 동굴 탐험 권리 신장을 위하여 힘쓸 일이다. 이렇게 한다 하여도 미국에 비하면 70년 이상 뒤쳐져 있는 상황 이다(작금, 단기 4342년/서기 2009년 4월 기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기서 너무 흥분 하면 안될 일이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SE는 또다시 1975년 당시 동굴 다이빙 교육 단체였던 NACD(National Association for Cave Diving)의 회장이 된 후로 총 맴버가 87명으로 NACD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 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하나 숙지 하여야 할 것은 당시의 NACD는 SE 가 회장 취임 후 Florida의 동굴 다이버 들만을 정규 맴버로 받아 들였던 기본 정책에서 탈피하여 훨씬 유동적인 정책 하에서 교육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SE는 교사들의 정기적인 방학 기간을 이용 하여 지속적인 동굴 탐험 활동을 하고자 결국은 고등 학교 수학 교사로 자신의 직업을 선택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집요한 탐험 의욕을 보여 주는 단적인 일례를 하나 살펴 보자.
세계에서 가장 긴 수중 동굴 관통 기록 갱신을 꿈꾸어 오던 SE는 자신이 1971년부터 꾸준히 탐험을 해오던 Florida의 Cathedral Canyon Spring이 진정 자신의 세계 기록 수립 동굴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고 동굴, 사실은 일반인이 흔히 생각 하는 산 위에 있는 그런 동굴 이 아닌 자연 연못 또는 지하수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호수 같은 개념으로써 약 30미터 수심에 지하수가 흘러 나오는 방향으로 수중 동굴이 형성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동굴을 소유 하고 있는 소유자를 섭외 하기 위하여 소유자를 탐문 하는 과정에서 소유자가 수원지로부터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한 집에서 거주 하는 것을 알고 그 집주인을 방문한다.
수중 동굴에서 다이빙할 수 있는 허가를 얻기 위해서 땅 주인과 협상을 벌이는 광경을 그의 저서, Caverns Measureless to Man에 의거하여 살펴보자.
“저희들이 선생님의 소유지에서 다이빙을 해도 되겠습니까?”
“안되겠는데요…>_<…?”
“저, 그럼 현금 사례를 하면 저희 들께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실 수 있는 지요?”
“안되겠다는뎅…:p…?”
“그럼 저희가 선생님의 소유지를 구매 하는 것이 가능 하겠습니까?”
“안되겠다고 했을텐데용…이거 뭥미, 왜, 자꾸 조르삼?...왕 짜증?~”
“제가 2년 전 선생님께서 이 소유지를 위하여 지불 하셨던 가격의 6배를 더 지불 하겠으니 제발 파시지요?”
“안되겠다능…ㅋㅋㅋ….”
당시 SE의 고백에 따르면 그가 모아 두었던 모든 저축 금을 이를 위한 구매 자금으로 내놓았던 것이라 하니 그가 얼마나 다급 하였던지 독자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소유자의 대답은 "Nope(안되겠삼)!" 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 수중 동굴 관통 기록 갱신 다이빙을 위한 수중 동굴 섭외에 쓴 잔을 마신 SE가 이를 잊고 지내던 3년 후인 1986년 바로 같은 Cathedral 소유주로부터, 자신의 Cathedral을 구매 하고자 하는 의사가 여전한지를 물어 오는 전화 연락을 시작으로 다시 세계 기록 갱신을 위한 정열의 ‘불’은 붙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1990년 12월 16일에 세계 최장 수중동굴 관통 기록 갱신에 성공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관통 기록이 3334미터, 최대 수심 62미터, 평균 시야 1미터, 총 14통의 구간 공기/깨스 탱크(Stage Tanks/Bottles) 그리고 총 다이빙 시간은 11시간 30분 이었다. 이 또한 단독 탐험 다이빙 이었으며 개방형 자가 호흡기를 이용 하였음을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이 기록은, 1984년 프랑스의 선두 수중 동굴 탐험가인 올리비에르 아이슬러(Olivier Isler)에 의하여 듁스 드 꼴리(Doux de Coly) 동굴에서 수립된 3100미터에서234미터를 더 관통한 기록이다.
이렇게 최장 수중동굴 관통 기록을 수립한 SE는 차기 자신의 세계 기록 방향을 ‘수중 동굴 최대 수심 기록 갱신’에 두고 1989년3월 28일Mexico에 위치한 나씨미엔또 델 리오 만떼(Nacimiento del Rio Mante) 에서 개방형 호흡기를 사용하여 기록적인 수심 267미터의 독보적인 단독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이른다.
1994년 4월 6일, 그의 45세 생일을 치른 5일 후 마침내 그는 자신의 대심도 트라이믹스 수심 기록을 갱신 하기 위하여 또 다시 Mexico의 자카톤(Zacaton) 동굴에서 단독 기록 갱신 다이빙을 하던 중 수면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불운을 맞게 된다.
수중 동굴 탐험의 거대한 별이 떨어진 날 이었다.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으며 또한 수중 동굴의 계몽*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하여 큰 가르침을 받았을까?
이렇게 수중동굴 탐험계의 거장들을 안타깝게 잃는 것이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인간은 도전 하는 동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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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Post by: Humanist | 2009-07-08, 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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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학 2009-07-08 16:12:17
단군 2009-07-08 16: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