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블로거 여러분, 저는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단군 박공 입니다~여러분들이 남겨 주시는 의견 하나 하나가 모여서 소중한 내일을 새롭게 발전 시키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하루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시고요 앞으로 자주 들러 주십시오~...그리고, 블로그의 주인 단군 박공은 일국왕의 애견 이명박과 수구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또한 조중동 매국 찌라시들의 조기 몰락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Hello, everyone, this is "The Parks" Blog. All of you are dearly invited in order to debate on topics that I post. I believe that every bit of your opinions is "Precious" . These bits of opinions will get accumulated for reshaping the world we all be living tomorrow. Don''t be hesitating for posting your opinions. Let''s have some decent fun. Shall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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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뿌 사원 수중동굴 탐험 기[Tam Wat Bang Pou Underwater Cave Expedition]
동굴다이빙/CaveDiving 2009-07-09, 16:27:34
방뿌 사원 수중동굴 탐험 기
Tam Wat Bang Pou Underwater Cave Expedition
Journal and Photos by Joon H. Park
Director of Photography by Chankit. C
Film was Directed and Produced by Prompop Lee
Motif: 동굴 인플루 엔자(Cave Influenza)가 도진다. 돌겠다. 누구든, 도와주삼
자,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또 해볼까? 수중 동굴 다이빙에 관한 보따리를 한 번 풀어볼까?

방뿌 사원의 수중동굴 부분이며 입구는 어른의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수심이 깊어지고 두 개의 도자기가 발굴된 곳의 수심은 근 2.2 미터에 이른다. 물론 깊숙이 더 들어가면 수심이 더욱 깊어 지리라.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 바로 사진에서 보다시피, 동굴 외부로도 물이 차 오르기도 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앞에 서 있는 카메라 크루의 머리 위로 석회석들의 색깔이 위와 아래가 다른걸 볼 수 있으리라. 위는 짙은 회색이고 아래는 석회석의 전형적인 색깔인 한얀색, 즉, 이 곳까지 물이 차 들어와서 아래 부분의 석회석 부분들을 모두 탈색 시켰다는 뜻이다. 이렇게 자연의 움직임을 하나씩 알아가는게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 시기상으로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그에 연관된 기사 한 쪽을 휘갈겨 보자.

근래에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나이트록스는 둘째치고 트라이믹스라든지 리브리더를 이용한 다이빙도 꽤 활성화가 되고 있는 조짐이다. 그것에서만 끝나지 않고 나아가서 수중 동굴의 영역에도 출사표를 던지는 분들도 계시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서나마 듣고 나니 드는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세상 참 희한하다” 이다.

발굴 후, 뱅콕의 문화재 담당국으로 들고 가서 감정을 위뢰해서 전문가의 감정을 받는 실제 모습을 팀원들이 동원해서 도큐멘리용 영상을 제작중이다. 사실, 저 당시 까지만 해도 팀원들이 큰 기대를 한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도자기들의 문양 패턴이 우리들 지식으로 보았을때 그리 큰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을것 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지, "예술은 보는 자의 눈 높이 만크만 보인다고." 우리들의 예술을 보는 눈 높이가 그 만치 밖에는 되지 않았었다는 방증 이리라. 헌데, 저 감정 후 일주일뒤에 단군 박공에게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It's over 500 yeras old pottery~." 실로 엄청난 희열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도큐멘터리 필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100년 이하로 추정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500년. 말이 500면 이지 우리나라의 "전체 조선왕조 500년"을 통 털어야 하는 그런 연대인 것이다. 인간의 삶이 저 당시에 40년 이라고 친다면 거의 13세대가 지난 시간을 지닌 도자기 들이라는 말이다.
정확히는 11년 전, 단기 4332년/서기 1998년 이다, 단군 박공이 수중동굴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상당히 거칠고 도전적으로 뛰어들던 때가 말이다. 그 이전 한 5년 정도는 수중동굴에 관한 공부도 하고 사고도 쳐가면서 남의 땅에 들어가, 뉴질런드에서, 무턱대고 동굴 다이빙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최초에 이들 두 도자기가 수중동굴에 방치되어있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한걸 추출한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좌측으로 사람 한 두어명 들어갈 공간으로 동굴 입구가 열려있는게 보인다. 저 곳을 두 도자기를 발굴해서 견져낸 후 찾지를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던거다. 수중 시야가 1cm도 나오지를 않더군. 그리고, 또 좀 자세히 보면 이들 두 도자기의 주위로 자잘하게 여러 조각들의 동물뼈와 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도한 다른 도자기들의 조각들도 역시 눈에 뜨인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태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동굴인 것이다.
그 당시는 고정익 비행기 조종사(Fixed Wing Airplane Pilot) 시절 이었다. 뉴질런드 에서도 넬슨(Nelson, South Island) 이라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방의 한 야산에 있는 조그마한 연못에서 동굴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동굴 다이빙을 하던 중 그 땅이 개인 소유인지를 동굴에서 막 나오자 마자 알게 되었고, 그 소유주가 호출한 경찰을 피해서 미리 보아놓은 가지 동굴의 또 다른 출구로 몰래 나와 냅다 도망쳤던 기억도 있다.
그 해가 단기 4327년/서기 1994년 가을이다. 그 해 4월, 수중동굴의 큰 별인 미국의 쉨 엑스리(Sheck Exley)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단군 박공이 미국에서 임무를 끝내고 뉴질런드로 막 돌아온 해이다. 인생 참 묘하다. 그가 사망한 바로 그 해에 단군 박공은 수중동굴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았으니 말이다.

도자기가 이쁘지 않은가? 꼭, 잘 빠지고 갖가지 색이 조화롭게 박혀 있어야 이쁜건가? 태고의 신비함을 지닌 자태이다.
어찌 되었든, 그 후에는 문제가 있었던 수중 동굴이 있던 농장의 주인에게 120시간의 사회 봉사를 하라는 법관의 명령대로 단군 박공은 그 농장에서 2주가 넘게 땀을 삘삘 흘리면서 사회 봉사를 했고 그럼으로써 그 주인과는 절친한 사이가 되어 동굴 다이빙에 큰 관심이 생기는 시절 이기도 했다.
사회 봉사의 법정 명령의 이유는 “사유지 무단 침입죄” 이었다. “헐, 그걸 내가 알았냐고~, 그 넓은 땅이 전부 누군가의 개인 소유란 걸.” 거의 2만평이 넘는 땅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단군 박공은 그렇게 동굴 다이빙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결국, 태국으로 들어오고 난 해인 단기 4331년/서기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금년 들어 1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그간 사람들의 탐험에 대한 의식도 변한 건가? 그간, 참 어지간히도 동굴 다이버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갖은 시간과 정열을 다 쏟아 부었건만 그렇게도 동굴 인구가 늘지를 않더니만 이제서야 이 쪽 분야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게 단군 박공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다.

그러다가 단군 박공은 더 이상 저변 확대에 역부족을 느끼고 태국에서의 사업 정착을 위해서 그간 벌려온 미디어 사업에 2005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고 이제 조금 동굴에 관한 기억이 저 족 지평선에 보이는 므라쥐(Mirage, 신기루 현상) 같은 이 때에 미국의 한국인 수중동굴 교관과의 조우로 인해서 그 고약한 “수중동굴 인플루 엔자(Underwater Cave Influenza)”가 다시금 고개를 슬그머니 들고 있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군 박공이 다시금 이 “암흑의 세계(?)”로 발을 딛는 것은 이미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군 박공은 수중 동굴을 찾기 위해서 그간 수 많은 동굴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오늘은 바로 그 이야기의 보따리를 푸는 두 번째 탐험 기 이다.
자, 그럼 들어간다.
방뿌 사원의 동굴[Tam Wat Bang Pou]
탐(Tam)이란 태국어로 동굴이라는 뜻이고, 왙(Wat)이란 우리말로 사원(절/사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말을 풀어 본다면, “3백 개의 봉우리 국립공원에 있는 방뿌라는 이름을 가진 사원/절에 있는 동굴” 이라고 하겠다. 동굴이 영어로는 케이브(cave) 이지만 멕시코(Mexico) 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언어로 씨노테(Cinote) 내지는 라틴어의 어원인 그로또(Grotto)라고도 지칭한다. 그걸 태국에서는 “탐(Tam)” 이라고 하는 고유 언어로 지칭하는 것일 뿐이다.

금번의 도큐멘터리를 총 지휘하고 제작한 프롬폽 리(Director Prompop Lee) 감독이 휴대용 영상 장비로 뱅콕의 문화재 담당자의 설명을 모큐멘터리화 하고있는 장면을 단군 박공의 뒤에서 한 컷.
이 동굴을 발견하게 된 사연이 또 재미있다.
단군 박공, 수 백 시간을 들여서 결국은 태국 내에서도 동굴이 밀집되어있다는 지역을 기어코 는 발견하고 마는데, 그 거리가 수도인 뱅콕에서 장장 780킬로미터 아래의 끄라비(Krabi) 라는 지역이다. 그 곳을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한 달에 4번을 4륜 구동의 SUV(Sport Utility Vehecle)트럭에 장비를 잔뜩 싣고 운전해서 내려갔다가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을 탐험하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운전해서 올라오길 근 5년 이상을 했다.
초기에는 아내와 단 둘이 내려가서 탐험을 진행하였으나 차 후, 아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보모를 비롯해서 4가족 전체가 한 달에 4번을 그런 식으로 오지로 내려가 “개고생”을 하고 마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뭐냐.
이런 건, 경험해 본 사람들만 아는 그런 처절한 인생살이인데 그걸 전부 다 내 자비 들여서 한 거라면 이해가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더 그랬던 것 같은데 항상 다음과 같이 믿고 있었다, “인생이 뭔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 나의 모든 정열을 받치는 게 그게 인생 아닌가?” 라고 말이다. 지금도 이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상당히 유들 해져(..^^..) 있다는 것만 빼고는 말이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서 하나씩 건져 내오는 그 짜릿한 맛이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고대에, 500년 전에 누군가가 이 도자기를 아니 물병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이 유물을 만들었을테고 대대로 사용되어졌을 이 유물이 단군 박공의 손에 의하여 발굴이 되고 그 팀 임원들이 힘을 합해서 도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작금 단군 박공이 소유한 회사인 미디어 타이(Media Thai)의 사이트에서 지체 방영하는 것이다. 이 필름은 유투브에도 없는 희귀한 영상이다. 저 도자기는 장장 500년 이상이라는 판정을 받은 도자기 이고.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 감동을 느낄 여유 조차도 없는가? 아님 말고~
아무튼, 그렇게 뱅콕과 끄라비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던 중 바로 금번 글의 소재지인 3백개의 봉우리 국립공원을 운전 중 창문을 통해 보았고 그 봉우리들이 대다수 석회지역(Karst Area)으로 이루어진걸 알고 그간 벼르고 벼르던걸 어느 날 하루 아내와 함께 탐험을 나섰으며, 결국에는 동굴이 있다는 실마리를 찾아내고 마침내 본격적인 탐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 이들, 도큐멘터리(Documentary)에 등장하는 단군 박공 이외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단군 박공, 태국 내에서 최초로 하이폭씩 깨스 다이빙 강사(Hypoxic Trimix Gas Diving Instructor)를 키워내는 강사 교관(Instructor Trainer)이다. 2000년도에 플로리다(Florida, The States)로 직접 날아가서 교육을 받고 거머쥔 자격증이다. 그 자격증 때문에 이 곳 태국 거주 양키들로부터 상당히 질투도 받고 현지인들의 경계심도 엄청 받았었지. 뭐, 최초를 말하라면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금번 글에서는 이 동굴만 집중해서 풀어 내려니 양해를 바란다.

혹시라도 떨어드릴까봐 조심해서 들고 나오는 두 번째 도자기 이다. 뱅콕으로 가지고와서 뱅콕 소재 문화재 담당국에 들고 가서 감정을 의로한 결과 두 도자기가 500년 이상의 것들이 라는 뜻밖의 성과를 얻었다. 그런데, 한가지 참으로 희한한건, 우리나라같으면, 이 도자기 어디서 어떻게 누가 발견해서 언제 발굴했는가를 꼼꼼이 조사하고 나아가서 두 개의 도자기를 회수해 갔을텐데 얘들 태국의 문화재 담당 하는 아이들이 우리를 무서워했는지 아니면 우리들 뒤에 누군가 큰 배경이 있는지 모르기에 그저 눈 감아주었는지는 몰라도 전혀 그런 자세한 내막을 알려고도 또한 회수 하려는 의지도 없더라는 말이지...헐...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아무튼, 이 두 도자기는 지금도 단군 박공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들을 바로 단군 박공이 키워낸 것이고 일일이 가르치며 수중동굴 도큐멘터리(Underwater Cave Documentary) 제작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바다/해양/짠물 다이버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나이트록스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나아가서 리브리더의 월등한 깨스 이용시의 장점들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인내심을 투자했다. 그러면서 개개인이 지닌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수준의 우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고는 마침내 뭔가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작당을 하게 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이들과 상당한 수준의 합동 체를 형성했으나 어느 순간에 이르자, 팀 일원 중 한 명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고 그럼으로써 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각자의 길을 다시 걸어가게 된 것이다.
금번의 도큐멘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 한 참 미완성의 도큐멘터리이다. 단군 박공은 여전히 완성 작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려는 몸짓을 할 것이고, 또한 이룰 것이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희망이란, “저 동굴이 500미터 곁에 있는 바다로 연결된 출구가 있을 것이고 그 동굴 전체를 트래버스(Traverse)로 연결해서 관통하는 것” 이다.
짧은 도큐멘터리 이지만 감독과 DOP(Director of Photography)가 상당한 경지의 인물들이라는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필름이다. 헌데, 아쉽게도 영어로 제작되었고 한글 자막은 준비가 안되었다. 이 점 양해 하시고 감상 하시기를 바란다.
이 동굴을 처음 발견하고 단군 박공이 스킨 장비를 착용하고 그 수중동굴 부분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글쎄 그 곳에 사람의 흔적이 있지 무언가. 한 마디로 충격 먹었었다. 원시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동굴인 것이다.
동굴이란 고대로부터 “집(House/Home)” 이란 개념과 동일하다는 걸 지난 글에서도 피력한바 있다. 그런 고대의 정지된 시공간을 단군 박공이 직접 보고 있다고 하니 그 잔잔히 밀려오는 충만감은 말로 다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곳을 전문 카메라 쟁이들을 다 동반하고 촬영을 하러 간 것이었다.
일단은, 그 두 개의 물병/도자기들을 건져내는 것이 우선 순위이고, 두 번째로는 그 동굴의 내부 형태를 감을 잡아야 하는 것이었다.
헌데, 영상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동굴 입구에 아주 잔잔한 진흙들이 아주 깊게 형성이 되어있었고, 도자기들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진흙들을 모두 밟고 다닌 관계로 주변의 수질이 죄다 먹물이 되어서 수중동굴의 입구조차도 나중에는 보이지가 않더라는 말이다. 이걸 영어로는 씰트(Silt) 라고 지칭하는 아주 미세한 침전물이다. 이런 침전물이 있는 동굴은 아주 위험하다. 시야를 완전히 가려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이 동굴에 이런 실트가 동굴 외부에 있다는 게 수상하더란 말이지. 그래서 단군 박공은 이 동굴과 외부 약 500미터 직선 거리에 떨어져있는 바다와 연결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그 동굴은 조석의 차이에 따라서 물이 들어왔다가 그리고 나갔다 한다는 정보를 지역 주민들에게서 얻었고. 그러니 궁금증이 더 할 수밖에. 그러나, 인간은 시각의 의존도가 99% 이상이다. 그러니, 어찌할 도리가 없이 후퇴할 밖에는.
언젠 가는 2차 도전을 해야지 싶다. 그게 언제냐고?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동굴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심증은 거의 100%다, 단지 언제 이걸 관통해서 증명하느냐 만 남아 있는 것일 뿐.

탐험을 완벽히 마무리 하지못한 마음이 참 우울 했지만서도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지금까지 숨쉬고 살아왔다. 그 시기가 다시 다가오는 느낌이다. 단군 박공의 정열은 그리 쉽게 식지 않음을 그 누구보다도 단군 박공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7년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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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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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by: Humanist | 2009-07-09, 16: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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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맨 2009-07-09 18:03:10 ตอบกลับ
김대학 2009-07-10 11:26:00
단군 2009-07-10 12:24:24
김대학 2009-07-10 23: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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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0-07-14 15:42:21 ตอบกลับ